궁금해결

장영실

장영실은 조선 세종 때 활동하며 자격루와 옥루 등 과학기구 제작에 참여한 과학기술자예요.

핵심 정리 기준
자격루 완성·발표일
1434년 8월 5일(음력 7월 1일)
중국 파견 연도
1421년
상의원 별좌 임명 연도
1423년
옥루 제작 연도
1438년
자격루 제작 기간
2년
처벌 구형 내용
곤장 80대와 삭탈관직 구형, 이후 형벌 감경
장영실이 만든 보루각 자격루를 복원한 실물 크기 작동 모형
사진 출처: G41rn8(CC BY-SA 4.0)(자르고 색을 조정함) · commons.wikimedia.org

장영실은 언제 태어나 세종 때 어떤 활동을 했나

장영실은 1421년 중국에 파견되고 1423년 상의원 별좌에 임명된 세종 때 과학기술자예요. 장영실의 출생 연도는 한 추정에서 1389~1390년, 아산 장씨 종친회의 주장에서는 1385~1390년 무렵으로 제시돼요. 태종은 장영실의 기술적 재주를 인정해 발탁했고, 세종은 그의 적성을 중시해 계속 기용했어요.

1421년에는 윤사웅·최천구와 함께 중국에 가 천문기기의 모양을 익혔고, 1423년에는 상의원 별좌에 임명됐어요. 1424년에는 정5품 행사직으로 승진해 갱점지기 제작을 명받았고, 그 결과 첫 물시계를 만들었어요. 이후 1434년 자격루 제작에 참여했고, 1438년에는 옥루 제작 사업에서 성과를 냈어요. 자격루는 1434년 8월 5일(음력 7월 1일)에 완성·발표됐어요.

장영실의 업적은 무엇이고 실제로 누가 만들었나

장영실은 1434년 자격루와 1438년 옥루 제작에 참여했어요. 1432년부터 1438년까지 진행된 천문기구 제작 사업은 이천이 책임을 맡았고, 자격루는 장영실·김조·이천이 함께 제작했어요.

기구시기와 기능제작 사업에서의 역할
자격루1434년 완성·발표된 자동 물시계로, 시각마다 종이 울리도록 만들었어요.장영실·김조·이천이 2년 동안 제작했어요.
옥루1438년에 제작된 자동 물시계예요. 해가 뜨고 지는 모습을 본떠 시간과 계절을 알리고 천체의 움직임을 관측하도록 했어요.천문기구 제작 사업의 일부로 추진됐고, 이천이 사업 책임을 맡았어요.
천문 관측기와 해시계대간의·소간의·현주일구·천평일구·정남일구·앙부일구·일성정시의·규표 등이 제작 목록에 포함돼요.여러 기구가 천문기구 제작 사업에서 함께 다뤄졌어요.
갑인자1434년에 주조된 구리 금속활자예요.이천이 총책임자였고 장영실도 주조에 참여했어요.

출처1

세종은 자격루 제작에 자신의 지도가 있었더라도 장영실의 도움이 없었다면 끝내 만들어 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평가했어요. 이 발언에는 왕의 지도와 장영실의 기술적 기여가 함께 드러나요. 따라서 장영실의 업적을 설명할 때는 개인의 기술뿐 아니라 이천·김조 등 다른 참여자의 역할도 함께 다뤄야 해요.

장영실의 가족 관계를 다룰 때 무엇을 구분해야 하나

인물의 가계를 살펴볼 때는 당대 기록에 직접 나타난 가족 관계와 후대 족보·문중의 계보 주장을 구분해야 해요. 특정 인물을 장영실의 자녀나 후손으로 소개하려면 관계를 뒷받침하는 기록과 계보를 함께 대조해야 해요.

장영실은 언제 역사 기록에서 사라졌나

장영실은 어가가 부서진 사건 뒤 곤장 80대와 관직 박탈이 구형되는 일을 겪었고, 이후 역사 기록에서 자취를 감췄어요. 다만 기록에는 왕이 형벌을 두 등급 낮췄다고 나와 있어 곤장 80대를 실제로 집행했다고 단정하면 안 돼요.

기록에 나타나는 마지막 주요 사건은 어가 파손에 따른 처벌 논의이며, 그 뒤의 행적은 이어지지 않아요. 아산시 인주면 문방리에는 장영실의 가묘가 있다고 소개돼요. 가묘의 존재와 실제 매장 경위가 확인되는 묘소는 구분해서 이해해야 해요.

장영실은 조선 과학기술사에서 어떻게 평가되나

1434년 자격루와 1438년 옥루 등 과학기구 제작에 관여한 장영실은 조선 전기 과학기술사에서 중요한 기술자로 평가돼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장영실을 궁중기술자로 소개하며 혼천의·자격루·옥루 등을 제작한 인물로 설명해요. 장영실은 기술 성과를 인정받아 1433년 정4품 호군 관직을 더 받았어요.

세종은 장영실의 솜씨를 높이 평가했고, 왕 곁에서 명령을 전하는 일도 맡겼다고 기록돼 있어요. 장영실의 기술적 기여를 평가할 때는 왕의 후원과 본인의 역할을 함께 살펴보는 한편, 이천이 천문기구 제작 사업을 책임지고 김조가 자격루 제작에 참여한 점도 고려해야 해요. 기록에 나타난 사업의 모습은 왕의 지시, 이천의 책임, 장영실과 다른 기술자들의 참여가 결합된 형태예요.

장영실 관련 후대 콘텐츠는 역사 기록과 어떻게 구분하나

1434년 자격루와 1438년 옥루 제작은 역사 기록에 나타나지만, 사극·영화의 대사와 사적 갈등까지 사실로 볼 수는 없어요. 작품의 설정을 살펴볼 때는 기록으로 확인되는 공적 행적과 극적 표현을 구분해야 해요.

구분내용
기록으로 확인되는 사실장영실은 1421년 중국에 파견됐고, 1423년 상의원 별좌에 임명됐으며, 자격루·옥루 제작에 관여했어요.
세부 장면을 기록만으로 재구성하기 어려운 부분세종과 나눈 사적인 대화의 정확한 말투, 일상적인 감정 관계, 개별 제작 장면은 극적 재구성의 대상이 될 수 있어요.
창작으로 구분할 요소작품에 연애·경쟁·음모·긴 대사가 등장한다면, 이를 뒷받침하는 역사 기록과 구분해서 봐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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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장영실과학관은 장영실을 재해석한 ‘영실이’, 측우기와 도우미 로봇을 결합한 ‘발명이’, 자격루에서 착안한 ‘자격이’, 자격루 자동 시보 장치의 용을 모티프로 한 ‘용실이’를 공식 캐릭터로 소개해요. 이처럼 후대의 문화 콘텐츠에 등장하는 모습은 역사 속 인물이나 당대 유물 자체와 같지 않아요.

장영실의 흔적과 관련 유적·유물은 어디서 볼 수 있나

장영실 관련 체험 전시는 충남 아산 환경과학공원 안의 아산 장영실과학관에서 볼 수 있으며, 전시는 1층과 2층에 마련돼 있어요. 1층에는 어린이관·과학공작실·기획전시실·4D영상체험관이 있고, 2층 장영실관은 물·바람·금속·빛·우주를 주제로 과학기술을 체험하도록 구성돼 있어요.

전시용 모형이나 재현 기구는 장영실이 실제로 만들고 사용한 원본 유물과 구분해서 봐야 해요. 후대에 그린 얼굴 그림은 실제 외모가 확인된 당대 초상과 구분해야 해요.

장영실은 어떤 과학기구와 연결해 기억하면 좋나

한국사 학습에서 장영실은 세종 때 과학기술 발전, 특히 1434년 자격루와 1438년 옥루 제작 사업으로 연결해 기억하면 좋아요. 대표 단서는 세종, 자동 물시계, 시각마다 울리는 종, 해시계와 천문 관측 기구예요.

문제의 단서연결할 내용구분할 점
자동으로 시간을 알리는 물시계자격루는 1434년에 완성·발표됐어요.장영실뿐 아니라 김조·이천도 제작에 참여했어요.
세종 때의 자동 물시계옥루는 1438년에 제작됐어요.자격루와 옥루는 서로 다른 기구이므로 이름과 기능을 구분해야 해요.
천문 관측과 해의 움직임을 살피는 기구대간의·소간의·앙부일구·일성정시의·규표 등이 관련돼요.물시계와 해시계, 관측 기구의 기능을 혼동하지 않는 것이 중요해요.
세종 때 금속활자 주조갑인자 주조에 장영실이 참여했어요.이천이 총책임자였다는 점도 함께 기억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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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에서 중요한 점은 장영실을 단독 발명가로만 외우지 않고, 세종의 후원과 이천·김조 등 공동 제작자의 역할을 함께 이해하는 거예요.

출처

  1. 장영실 — 위키백과 · 2026년 10월 2일 시행 · 2026년 10월 22일 확인(새 창)
  2. 국역 — 조선왕조실록 — 조선왕조실록 누리집 · 2026년 10월 22일 확인(새 창)
  3. 장영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누리집 · 2026년 10월 22일 확인(새 창)
  4. 선문대 장영실과학관, ‘꼬마 영실이와 함께하는 과학축제’ 개최 < 교육일반 < 교육문화스포츠 < 기사본문 — 디트NEWS24 기사 — 디트NEWS24 · 2026년 10월 13일 보도 · 2026년 10월 22일 확인(새 창)
  5. 아산 장영실과학관> 여행지 | '열린 관광' 모두의 여행:대한민국 구석구석 — '열린 관광' 모두의 여행:대한민국 구석구석 누리집 · 2026년 10월 22일 확인(새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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