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해결

박종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1987년 1월 14일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남영동 분실에서 서울대 언어학과 학생 박종철이 경찰의 물고문으로 숨진 사건이에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경찰이 처음에는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고 발표했지만 시체 부검 결과 전기고문과 물고문에 의한 사망으로 밝혀졌다고 설명해요. 이 글은 배경, 날짜별 경과, 피해, 법적 평가, 쟁점, 책임 절차, 기록과 기념 장소, 작품 속 사건을 정리해요. 경찰관과 의료진의 이름은 쓰지 않고 직책으로 적었어요.

핵심 정리 기준
사건
1987년 1월 13일 자정쯤 연행돼 1월 14일 남영동 분실 509호 조사실에서 숨졌어요
정부 시인
사건 발생 5일 만인 1월 19일 정부가 물고문 사실을 공식 시인하고 수사경관 2명을 구속했어요
은폐 폭로
5월 18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사건 축소·조작과 고문 가담 경관이 5명이었다는 사실을 밝혔어요
6월 항쟁
6월 10일 '박종철 고문 은폐조작 및 호헌선언 반대 범국민대회'에서 1987년 6월 민주항쟁이 시작됐어요
정부 조사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9년 6월 7일 관계기관 대책회의가 사건을 은폐·조작했다고 밝혔어요
박종철 글의 대표 사진으로, 남영동 대공분실(지금의 경찰청 인권센터) 건물을 담은 장면.
사진 Jjw(자르고 색을 조정함)위키미디어 공용CC BY-SA 4.0

사건 전에는 어떤 일이 있었나요

위키백과에 따르면 박종철은 1986년 청계피복노조 합법화 요구 시위를 한 이유로 구속돼 징역을 선고받은 적이 있고, 출소 뒤에도 학생운동에 참여했어요. 1987년 1월 13일 자정쯤 하숙집에서 치안본부 대공분실 수사관 6명에게 연행됐는데, 당시 연행 명목은 수배 중이던 대학문화연구회 선배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서였어요. 같은 해 4·13 호헌조치가 있었고, 6·10 국민대회 선언문은 이 조치를 국민의 합의를 배신하고 국민적 여망인 개헌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조치라고 규탄해요. 선언문은 분단을 이유로, 경제개발을 이유로, 올림픽을 이유로 민주화를 미루자는 논리에서 국민이 깨어나고 있고 민주화는 88올림픽을 이유로 연기될 수 없다고 주장했어요. 이 사건은 이런 정치 상황 속에서 일어났어요.

사건은 날짜별로 어떻게 전개됐나요

날짜단계내용출처
1987년 1월 13일 자정쯤연행하숙집에서 치안본부 대공분실 수사관 6명에게 연행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1월 14일사망남영동 분실 509호 조사실에서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받다 숨짐. 오전 11시 45분쯤 의사가 현장에서 검진했을 때는 이미 숨진 상태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위키백과
1월 14일 밤사체보존명령경찰이 사건을 숨기려 화장하려 했으나 검찰이 사체보존명령을 내림위키백과
1월 15일부검·첫 보도오후 6시가 넘어 한양대병원에서 부검, 중앙일보가 '경찰에서 조사받던 대학생 쇼크사' 기사를 보도위키백과
1월 16일경찰 발표치안본부장과 치안감이 기자회견에서 책상을 '탁' 치니 '억' 소리를 지르며 쓰러졌다고 발표위키백과
1월 19일시인·구속정부가 물고문 사실을 공식 시인하고 수사경관 2명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로 구속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월 7일추도각계인사 6만 명이 준비위원이 된 '박종철군 범국민추도회' 개최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월 19일고문사례보고민가협 주최 고문사례보고대회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5월 18일폭로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사건 축소·조작 폭로, 서울지검이 6명 추가 구속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5월 27일단체 결성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결성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6월 10일국민대회'박종철 고문 은폐조작 및 호헌선언 반대 범국민대회' 개최, 6월 민주항쟁 시작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1년 2월 26일명예졸업서울대학교가 언어학과 명예졸업장 수여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8년 6월 10일기념관 개관옛 남영동 대공분실(현 경찰인권보호센터)에 박종철기념관 개관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9년 6월 7일정부 조사과거사정리위원회가 관계기관 대책회의의 은폐·조작을 확인했다고 발표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출처13

어떤 피해가 있었나요

희생자는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3학년이던 22세의 박종철이에요. 부검 결과 온몸에 피멍이 들고 엄지와 검지 사이에 출혈 흔적이 있으며 사타구니와 폐 등이 훼손되어 있고 복부가 부풀어 있었으며 폐에서 수포음이 들렸다고 위키백과는 정리해요. 부검을 맡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의는 군부와 경찰의 협박과 회유를 물리치고 1월 17일 보고서를 작성했고, 1년 뒤 그때 받은 회유와 협박을 적은 일기를 언론에 공개했어요. 경찰은 부검을 거친 시신을 가족 허락 없이 벽제 화장터에서 화장하는 등 증거인멸을 시도했다고 해요. 사건은 당사자와 가족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도 큰 충격을 줬어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이 사건이 6월 민주항쟁의 계기가 됐다고 설명하고, 아버지가 대한변호사협회에 진상규명과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 대행을 요청하는 진정서를 냈다고 위키백과는 전해요.

법적으로는 어떤 책임이 따졌나요

정부는 1월 19일 수사경관 2명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어요. 지금의 형법 제125조는 경찰 등 인신구속에 관한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이 형사피의자 등에 대해 폭행 또는 가혹행위를 하면 5년 이하의 징역과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하도록 하고,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4조의2 제2항은 형법 제124조·제125조의 죄를 범해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해요. 이 두 조문은 현행 법 문언이에요. 위키백과는 1월 19일 치안본부장이 특별 기자회견을 열어 기존 입장을 뒤집고, 박종운의 소재를 묻는 심문에 답하지 않자 머리를 욕조에 집어넣었다가 내놓기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목 부위가 욕조 턱에 눌려 질식사했다며 가혹행위로 인한 사망을 시인했다고 정리해요. 사건명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쓰는 대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에요.

사건 경과를 둘러싼 쟁점은 무엇이었나요

핵심 쟁점은 고문에 가담한 사람이 몇 명이었고 은폐가 조직적이었는지였어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5월 18일 치안감 1명과 경정 2명 등 대공간부 3명이 사건을 축소·조작했고 고문 가담 경관이 5명이었다고 폭로했어요. 위키백과는 대공경찰 책임자의 주도로 5명이 가담한 사건을 2명만 가담한 것으로 꾸미고 앞선 2명에게 거액의 돈을 주었다는 점도 사제단이 새로 밝혔다고 정리해요. 이 폭로 뒤 서울지검은 6명을 추가 구속했고 정부는 문책 인사를 단행했지만, 경찰과 검찰의 은폐·조작 시도는 정부의 도덕성에 결정적 타격을 줬다고 사료 컬렉션은 평가해요.

6·10 국민대회 선언문은 박종철을 고문 살인하고 은폐·조작했다며 당시 정권을 규탄하고 4·13 호헌조치가 무효임을 선언했어요. 이 선언문은 대회 주최 측의 입장이에요.

누가 어떤 책임을 졌나요

사료 컬렉션에 따르면 정부는 수사경관 2명을 구속한 뒤 내무부장관과 치안본부장을 전격 해임해 사태를 수습하려 했고, 5월 18일 폭로 뒤에는 서울지검이 6명을 추가 구속하고 치안감 등 주요 인사에 대한 문책 인사를 했어요. 2009년 6월 7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안기부, 내무부, 법무부, 청와대 등으로 구성된 관계기관 대책회의가 최소 두 차례 열려 사건을 은폐·조작했다고 밝혔어요.

법은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희생된 사람과 유족에 대한 명예회복과 보상도 정해요.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은 1964년 3월 24일 이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문란하게 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한 활동을 '민주화운동'으로 정의하고,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사망한 사람을 관련자로 규정해 심의·결정으로 명예회복과 보상을 하도록 해요(제1조, 제2조).

기록과 기념 장소는 어디에서 볼 수 있나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 컬렉션과 사진 자료에서 사건 개요와 사제단 침묵시위 사진을 볼 수 있어요. 2008년 6월 10일 옛 남영동 대공분실(현 경찰인권보호센터)에 박종철기념관이 개관했고 신문기사와 친필 편지 등의 유품이 전시돼 있으며,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동편에는 추모비가 있어요.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가 활동하고 있다고 해요. 우리역사넷의 '6·10 국민 대회 선언'에서 당시 선언문 전문을 읽을 수 있어요. 사료 컬렉션의 사건 설명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의 『한국민주화운동사연표』와 서중석의 『한국현대사 60년』 등을 주요 출처로 밝히고 있어서, 더 깊이 읽으려면 이 문헌들을 따라가 볼 수 있어요.

영화와 드라마 속 사건은 실제와 어떻게 다른가요

위키백과는 2017년 개봉한 영화 〈1987〉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소재로 삼았고, 2022년 3월 24일 방송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가 '1987, 종철이와 비둘기들'이라는 제목으로 이 사건을 다뤘다고 소개해요. 영화나 방송은 사건을 재구성한 작품이라서 순서를 압축하거나 인물을 합치기도 해요. 작품을 본 뒤 실제 순서를 확인하고 싶다면 사료 컬렉션이 정리한 1월 14일 사망, 1월 19일 정부의 시인, 5월 18일 사제단의 폭로, 6월 10일 범국민대회 순서를 기준으로 삼으면 돼요. 또한 영화나 방송은 사건을 재구성한 작품이므로 인물의 대사와 장면을 실제 기록으로 읽어서는 안 돼요. 날짜, 발표 내용, 구속과 문책 같은 사실관계는 위 사료 컬렉션과 법원·정부 공식 기록으로 확인해야 해요. 위키백과는 2019년 한 예능 프로그램이 이 사건을 연상시키는 자막을 쓴 것이 희화화라는 논란을 낳았다고도 전해요.

출처

  1.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 컬렉션 · 2026년 10월 24일 확인(새 창)
  2. 6·10 국민 대회 선언 — 사료로 본 한국사(우리역사넷) · 2026년 10월 24일 확인(새 창)
  3.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 위키백과 · 2026년 10월 24일 확인(새 창)
  4. 박종철고문치사사건 진상 규명 등을 요구하며 침묵시위를 벌이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신부들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2026년 10월 24일 확인(새 창)
  5. 형법 — 국가법령정보센터(법제처) · 2026년 10월 24일 확인(새 창)
  6.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 국가법령정보센터(법제처) · 2026년 10월 24일 확인(새 창)
  7.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 국가법령정보센터(법제처) · 2026년 10월 24일 확인(새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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