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수대교붕괴
성수대교 붕괴 사고는 1994년 10월 21일 아침 서울 성동구 성수동과 강남구 압구정동을 잇는 성수대교의 상부 트러스가 한강으로 무너져 내린 사고예요. 국가기록원은 이 사고의 인명 피해를 모두 49명, 그중 사망 32명으로 기록해요. 이 글은 경과, 피해, 원인과 대법원 판결, 책임 절차, 제도 변화와 복구, 기록을 공식 자료 중심으로 정리해요. 희생자 이름은 쓰지 않았어요.
- 발생
- 1994년 10월 21일 금요일 아침 7시 40분쯤, 성수대교 강북 쪽에서 10~11번째 교각 사이예요
- 인명 피해
- 사망 32명, 부상 17명(중상 3명, 경상 15명)으로 모두 49명이에요
- 직접 원인
- 용접 시공 결함과 제작오차 검사 미흡, 피로균열을 막지 못한 점검·유지관리 미비, 규정 이상 중량 차량 통행 규제 소홀이에요
- 재판
- 대법원은 1997년 11월 28일 교량 제작·시공·감독·유지관리 책임자들에게 업무상과실치사상 등 유죄를 인정했어요
- 복구
- 1995년 4월 26일 복구공사가 시작돼 1997년 7월 3일 차량 통행이 재개됐어요

어떤 사고였나요
국가기록원 설명에 따르면 서울 전역에 가랑비가 내리던 금요일 아침, 출근과 등교길 승객을 태운 버스와 승용차들이 빗길을 달리던 중 성수대교의 10번째와 11번째 교각 사이 120미터 가운데 중앙 48미터의 현수 트러스가 갑자기 꺼지면서 한강으로 내려앉았고, 다리 위를 달리던 차량 6대가 함께 추락했어요. 국가기록원 '금주의 기록'은 이 사고로 5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소개해요. 위키백과는 사고 시각을 오전 7시 38분쯤으로 적어 국가기록원의 7시 40분쯤과 약간 달라요. 성수대교는 1977년 4월 9일 착공해 1979년 10월 15일 준공된 폭 19.4m, 길이 1,160.8m의 4차선 교량으로, 동아건설이 116억 원의 공사비로 시공했고 미관을 살리기 위해 처음으로 거버 트러스 공법을 쓴 다리였어요. 영동 신도시 개발로 생긴 강남·강북 간 주요 교통축이었고, 상계아파트단지와 분당신도시 개발에 따라 이용 차량이 크게 늘었어요.
사고는 어떻게 진행되고 복구됐나요
| 날짜 | 단계 | 내용 | 출처 |
|---|---|---|---|
| 1977년 4월 9일 | 착공 | 성수대교 착공 | 국가기록원 |
| 1979년 10월 15일 | 준공 | 2년 6개월 만에 준공, 폭 19.4m, 길이 1,160.8m의 4차선 교량 | 국가기록원 |
| 1992년 12월~1993년 12월 | 점검 | 기초부위 일부 부식 등이 확인됐으나 보수·보강이 제때 실시되지 않음 | 국가기록원 |
| 1993년 | 교통 증가 | 서울 동부간선도로 성수대교~의정부 구간 개통으로 교통량 증가 | 위키백과 |
| 1994년 10월 21일 오전 | 붕괴 | 10~11번 교각 사이 트러스가 한강으로 추락, 차량 6대 추락 | 국가기록원 |
| 같은 날 오후 7시 | 시장 경질 | 사고 책임을 물어 서울시장 경질 | 위키백과 |
| 1995년 4월 5일 | 법 제정 | 「시설물 안전관리 특별법」 제정 | 국가기록원 |
| 1995년 4월 26일 | 복구 착수 | 현대건설이 공사비 780억 원으로 복구공사 시작 | 국가기록원 |
| 1997년 7월 3일 | 통행 재개 | 사고 발생 2년 8개월 만에 차량 통행 재개 | 국가기록원 |
| 1997년 11월 28일 | 판결 | 대법원 97도1740, 97도1741 판결 선고 | 법원 |
| 2004년 9월 17일 | 확장 개통 | 8차선으로 확장된 성수대교 개통 | 국가기록원 |
피해는 얼마나 컸나요
국가기록원은 사고로 총 49명이 피해를 입었고, 사망 32명(남 17명, 여 15명), 부상 17명(중상 3명, 경상 15명)이라고 기록해요. 차량 6대(버스 1, 봉고 1, 승용차 4)가 추락했고, 서울대공원~번동을 운행하던 16번 버스는 붕괴 경계 지점에 걸쳐 있다가 뒤집힌 채 떨어지면서 먼저 떨어져 있던 상판과 충돌해 찌그러졌어요. 위키백과는 사망자 수를 32명(남 16명, 여 16명)으로 적어 성별 구성이 국가기록원과 달라요. 같은 자료는 버스 승객 31명 중 29명이 숨졌고, 승합차에 탄 경찰은 전원 무사해 구조에 참여했다고 정리해요.
왜 무너졌나요
국가기록원은 성수대교가 한남대교와 함께 가장 사고 위험이 큰 교량으로 알려져 왔는데도 관계 당국이 이를 무시하고 보수·보강을 제때 하지 않았다고 설명해요. 붕괴의 직접 원인은 유효 단면적을 줄이고 응력집중을 일으킨 용접 시공 결함과 제작오차 검사 미흡, 피로균열의 진전을 막지 못한 점검 및 유지관리 미비, 피로균열을 가속한 규정 이상 중량 차량의 통행 규제 소홀이라고 판단됐어요.
검찰 조사 결과 트러스 연결 이음새의 용접 두께가 10mm 이상이어야 하는데 8mm밖에 되지 않았고 강재 볼트 연결핀 등도 부실했으며, 관리 당국은 근본적인 보수 없이 녹슨 부분을 페인트로 칠해 위험을 숨겼다고 해요. 성수대교를 이용하는 차량이 크게 늘어 붕괴 당시 하루 105,000대를 처리했다는 점도 원인으로 꼽혔어요. 위키백과는 설계 하중이 DB-18(총중량 32.1t)이었는데 이를 넘는 과적 차량이 자주 지나 40t이 넘는 차량의 압력을 받았다고 정리해요.
원인과 책임은 어떻게 밝혀졌나요
참고 자료에는 1995년에 만들어진 '성수대교 붕괴사건 원인규명감정단 활동백서'가 올라 있고, 국가기록원에는 사고 관련 기사 기록물(1994년 10월 22일~)이 보존돼 있어요. 책임은 형사재판으로 가려졌어요.
대법원은 1997년 11월 28일 97도1740 판결에서 교량 건설회사의 트러스 제작 책임자, 교량공사 현장감독, 발주 관청의 공사감독 공무원 등에게 업무상과실치사상, 업무상과실일반교통방해, 업무상과실자동차추락죄 등의 유죄를 인정했어요. 교량붕괴에서 과실에 의한 공동정범이 성립한다고 보았고, 부실제작과 부실시공으로 트러스가 붕괴되는 것도 일반교통방해죄의 '손괴'에 포함된다고 설명했어요. 업무상과실치사상죄의 공소시효는 피해자들이 사상에 이른 결과가 발생해 범죄행위가 종료한 때부터 진행한다고도 했어요.
같은 날 선고한 97도1741 판결은 교량의 유지·관리 책임을 맡고 있던 서울시 도로국 및 산하 동부건설사업소 소속 공무원들에게 교량 제작·시공자들과의 공동과실 책임을 인정했어요.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사상은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에요(제268조).
피해자와 유족은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나요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공무원의 직무 집행 중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해 타인에게 손해를 입히면 배상하도록 정해요. 사고 직후 서울특별시는 시장을 본부장으로 8개 반을 편성한 대책본부를 설치했고, 15개 병원에 사망자를 안치하고 6개 병원에 부상자를 후송했어요. 지금의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지역에 응급대책, 재난구호와 복구를 위한 행정상·재정상·금융상·의료상 특별지원을 할 수 있게 해요(제60조, 제61조). 사고 당시 경찰이 교통을 통제하고 소방대와 119구조대가 구급차로 사상자를 구조했으며, 해난구조대가 잠수요원을 출동시켜 시신을 인양했어요. 사고 뒤에는 교통량 분산을 위해 우회도로 안내판을 설치하고 영동대교와 동호대교로 교통을 분산했으며 시내버스 노선도 변경됐어요.
사고 뒤에는 어떤 제도가 만들어졌나요
국가기록원은 시설물 관리자가 임의로 정한 기술이나 지침에 따라 관리하던 체계를 1995년 4월 5일 「시설물 안전관리 특별법」 제정으로 법제화했고, 부실 설계 및 감리자에게 5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 벌금으로 제재를 강화했으며, 1995년 6월 시설물 안전 및 유지관리 업무지침서를 발간했다고 설명해요. 확장 공사 후의 성수대교는 트러스가 붕괴되어도 한강에 떨어지지 않도록 낙교방지턱이 설치됐고 교량 등급도 2등교에서 1등교로 높아졌어요. 위키백과는 같은 트러스식 공법으로 지어진 당산철교도 안전점검 뒤 철거·재건설에 들어가 1999년 11월 22일 다시 개통됐다고 정리해요.
지금의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공중이용시설의 설계·설치·관리상 결함으로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한 재해를 중대시민재해로 정의하고(제2조 제3호), 설치·관리 결함으로 사망에 이르게 하면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등을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요(제10조).
기록과 추모는 어디에서 볼 수 있나요
국가기록원의 분야별 주제 검색 '성수대교 붕괴'와 '금주의 기록 성수대교 붕괴사고 발생'(공보처 홍보국 사진담당관이 1994년에 생산한 사진 기록)에서 사고 기록을 볼 수 있어요. 사고 관련 기사 기록물(1994년 10월 22일~)은 국가기록원 기록정보서비스에서 열람할 수 있고, 판결문은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볼 수 있어요.
작품 속 성수대교와 실제는 어떻게 다른가요
위키백과는 노래 〈성수대교〉(1995년 5월), 영화 〈청포도 사탕: 17년 전의 약속〉(2012년)과 〈벌새〉(2019년), 드라마 스페셜 〈딸기 아이스크림〉(2011년), 〈감자별 2013QR3〉(2013년), 〈시그널〉(2016년) 등을 이 사고와 관련된 작품으로 소개해요. 〈시그널〉은 다리 이름을 달리 붙여 성수대교 붕괴가 연상되는 장면을 넣었다고 해요. 작품 속 설정은 창작이므로 사고의 원인과 피해는 위 공식 기록과 판결문을 기준으로 봐야 해요.
출처
- 성수대교 붕괴 — 국가기록원 분야별주제검색 · 2026년 10월 24일 확인(새 창)
- 성수대교 붕괴사고 발생 — 국가기록원 금주의 기록 · 2026년 10월 24일 확인(새 창)
- 성수대교 붕괴사고 관련기사 — 국가기록원 기록정보서비스 · 2026년 10월 24일 확인(새 창)
- 성수대교 붕괴 사고 — 위키백과 · 2026년 10월 24일 확인(새 창)
- 대법원 1997. 11. 28. 선고 97도1740 판결 — 대법원 판결(국가법령정보센터) · 2026년 10월 24일 확인(새 창)
- 대법원 1997. 11. 28. 선고 97도1741 판결 — 대법원 판결(국가법령정보센터) · 2026년 10월 24일 확인(새 창)
-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 국가법령정보센터(법제처) · 2026년 10월 24일 확인(새 창)
- 국가배상법 — 국가법령정보센터(법제처) · 2026년 10월 24일 확인(새 창)
- 형법 — 국가법령정보센터(법제처) · 2026년 10월 24일 확인(새 창)
-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 국가법령정보센터(법제처) · 2026년 10월 24일 확인(새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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